번호 제 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57 조구새끼가 익고 꼬막이 다문 입을 벌린다. 이준 2007-02-14 2601   조구새끼가 익고 꼬막이 다문 입을 벌린다.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목포 선창가 ‘만선식당’연탄불 풍경 ▲ 얼마 만인가, 이 웃음. 뜨겁다. 조기나 꼬막, 조개들을 굽고 있는 연탄불이 뜨거운 건 아니었다. 퇴락한 선창이 잠시 뜨거웠다. 홍어가게엔 택배 주문이 뜸한 엽서처럼 날아든다. 만선식당은 새 밥을 안한 지 며칠 됐다. 어물전은 파리들만 들렀다 가고, 야채 노점은 해 저물고 시금치 한 봉지 판 게 전부다. 정말 오랜만이다. 손님이 없는 만선식당 연탄불 위에 전부 모였다. 삶이 건네는 시름은 소주 한 잔으로 대적하는 게 제격이다. 석쇠 위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조기 몇 마리와 꼬막 한 주먹이 올려져 있다. 안도현이 그랬다. <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./ 너는/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.>(‘너에게 묻는다’ 전문) 여기서 보니 알겠다. 연탄이 사람의 마음을 달군다. 그렇게 불붙은 연탄이 뜨겁게 묻고 있다. 그 질문에 답하듯 고단한 하루를 등에 짊어진 그이들이 활짝 웃는다. 그 웃음, 슬프게 아름다웠다. ▲ 어쩔 땐 연탄불이 아름답다. 익고 있는 건 조기나 꼬막이 아니다. 연탄불 위에서 그이들의 고단한 하루가 익는다. “오늘은 다 띵겨(던져) 불고 쐬주나 묵어 불드라고. 작것, 손님도 오도 안헌디 앙거 있을랑께 궁뎅이만 쑤시그만.” 김막내(60)씨의 선창에 소주잔들이 부딪친다. 벌써 여러 해 지났다. 목포항엔 배만 끊기면 암흑이다. 영산강에 하구언이 막아진 뒤로 여러 뱃길이 끊겼다. 만선을 부르는 배도 없다. 설령 있다고 해도 그 배들은 어판장 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. 한때 웃돈을 주고도 가게를 구할 수 없던 곳이었다. 밀려드는 선원들의 발길에 앉을 의자가 부족했다. 그러나 모두 옛일이다. 갈수록 판이 커진다. 인근 상인 서넛이 더 들어서고, 조기새끼가 익고 꼬막이 다문 입을 벌린다. 싸 먹을 음식도 없는데 큼지막한 쌈배추가 등장한다. 보리 넣어 끓인 홍어애국도 나온다. 한때 저 홍어애국이 손님을 불렀다. “그 많던 사람 모도 싹 다 어디로 가불었는가 몰라. 홍어애국 한 그럭만 내놔도 기(게) 눈 감추덱끼 후딱 밥 몰아(말아) 묵고, 쐬주 한 뱅 비워 불던 선원들이 천지였는디….” 만선식당 주인 김영희(58)씨가 슬며시 옛 시절 한 토막을 꺼내 놓는다. “아따, 옛날 야그 하문 뭣한다요. 장사 지대로 헐라문 진작에 신시가지로 떴어야제. 그나저나 연탄불에 꿔 묵은께 조기가 벨라도 맛나네.” 최문수(64)씨가 말을 받는다. 금방 소주병이 비워지고, 석쇠 위 익어가던 조기와 꼬막이 사라졌다. 연탄불만 여전히 뜨겁다. 퇴락한 선창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그이들의 하루도 잠시 뜨거웠다.